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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약이오름
어릴 적엔 아빠와 종종 오름에 올랐다.
“아빠 있잖아, 이렇게 큰 무덤엔 누가 자고 있어?” 내가 물었다.
“여기엔 많은 마음이 자고 있는 거야. 원래는 아주 작은 모래성이었는데, 사람들이 마음을 하도 버려두고 가는 바람에 쌓이고 쌓여 이만큼이나 큰 무덤이 된 거야.” 아빠가 말했다.
“어떤 마음을 버려두고 갔는데?” 내가 되물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아빠가 대답했다.
“아, 그 마음이 자라 모래성에 새싹이 난 거구나?”
“그런 셈이지.”
제주 인터라켄
서귀포시의 중산간도로를 달리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두니 점잖은 오름 하나가 있다. 말수가 적어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 할 뻔했다. 보아하니 스위스의 인터라켄지방과 사뭇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바람도 풍경을 만드는 것이 그렇다.
알고 보면 사실은
특별히 예쁜 구석이 없는 것들이 좋다. 제주엔 작고 큰 오름들이 사백여 개나 있다지만 백약이오름에 유난한 마음을 두는 건 역시 알게 모르게 예쁘장한 그 은근한 구석 때문일 것이다.
the bom volume 04 <작고도 큰 발견들> '오름에 오른다는 것은' 중에서
글 라어진 / 사진 김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