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미안해하는 것’
매일 밤 11시까지 잔업을 해야 겨우 생활비를 건질 수 있는 기술직 신세. 그런데 야근은커녕 오후 일조차 이렇게 힘이 드니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 함께 살면서 적은 월급을 타다 주어도 불만 한 번 표현해 본 적 없는 그녀였다.
“많이 편찮으세요? 빨리 오세요.”
아내가 근심 섞인 목소리로 위로를 해준다. 그는 그녀가 자신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알량한 자존심에 싫은 내색을 하자니, 그것 또한 미안하기만 했다.
‘올려다보면 한도 끝도 없어요.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예요. 몸이 건강하면 뭐든 못해요?’
그의 어깨가 처질 때마다 그렇게 힘을 북돋워 주곤 하는 아내.
그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푸근해졌다.
-‘미안하다’는 말은 용서를 구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각박한 생활 속에서 위로받고 사랑을 확인하려는 표현입니다. 세상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답답하고 힘겨울 때, 먼저 이야기해 보세요. 나직한 목소리로 말입니다.
‘미안하다.’ ‘미안해요.’
훈훈한 감정의 교류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함께 있어도 가끔은 외로운 서로를 보듬어주는 것
그는 이 세상에 외톨이로 남겨진 것 같았다. 더 이상 남편을 존중하지 않는 아내, 아빠는 ‘현금지급기’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아이. 아내와 아이는 사이가 좋았다. 걸핏하면 둘이서만 쑥덕거렸다.
살아온 세월이 허망하기만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삶은 그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가족’이라는 허상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을 감수해 왔지만, 가족 구성원들은 그런 그를 당연하게 여길 뿐이었다.
갑자기 몸서리치게 외로워졌다. 이러려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산 것은 아니었다. 낯선 회한 같은 감정이 그의 폐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요즘 많이 외롭구나. 나도 얼마 전에 그랬잖아. 우리 다음 달에 휴가 맞춰서 단 둘이서 여행이라도 다녀오자. 응?”
“나는 너랑 다를 수밖에 없어. 너는 내 앞에서 푸념이라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하거든. 내가 힘들어하는 걸 보이면 네가 두 배, 세 배는 더 힘들어할 테니까. 그래서 더 힘들고 외롭단 말이야.”
그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그랬다. 그라고 해서 강철로 만든 로봇은 아니었다. 그동안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없이 집안의 버팀목이 되어준 그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그가 외롭고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녀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또 퇴근할 때 술 한 잔 하다 보면 풀릴 수도 있겠지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아이와 씨름을 하는 그녀만 외롭고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
누워 있는 그에게 다가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는 잠꼬대를 하듯 “응”하더니 잠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입니다. 그렇게 외롭기 때문에 자신의 빈 공간을 채워줄 반쪽을 만나 결혼이라는 것을 합니다. ‘완전해질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결혼은 완성이 아닙니다. 완성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신기루일 뿐입니다. 그래서 다시 지치고 외로워집니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는 것은 천만 다행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외로울 때 위로해 줄 사람이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