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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팔경(箕山八景) - (氷玉亭)

by 월간김현청 posted Jun 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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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 末의 中顯大夫 典客寺令 永山君 金令貽는 難國을 求하려고 重臣들과 힘을 합쳐 온갖 힘을 다 했으나 기울어진 國運이 李氏에게로 기울어 두 아들 吉元과 苞와 세 사위(長壻-順天人 朴元龍 吏部侍郞, 次壻-求禮人 張丕 漢城判尹, 四壻 密陽人 朴時庸 大提學)를 對同 代代로 지켜온 故鄕으로 낙향하여 이곳 箕山 臺岩(氷玉亭)에서 消日하다 逝去하시니 亂世에 後孫에게 미칠 後患이 두려워 墓所에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아 子孫들이 失傳된 墓所를 대신하여 세 翁壻와 같이 네 壇을 모시고 해마다 陰歷 10月 1日 네 門中이 時祭를 모셔 오다 密陽朴氏와 順天朴氏는 墓를 찾아 移轉해 갔고 金,張 兩門에서 壇祭를 모시고 있다.

***永山金氏의 貫祖이신 金令貽 墓所로 陽佳洞 山 19-1番地 金政承골에 後孫과 647(2002.5.29現)年間 相接을 잊어 오다 故 金東杓氏의 勞力으로 族譜에 나타난 地名(伽倻谷-개골-陽佳洞-政承골-書堂골)과 住民(迎日鄭氏-정태모씨 外 2名)의 證言을 土坮로 찾아 金斗性氏가 뜻을 같이하는 몇분의 協助를 얻어 永山金氏 貫祖墓 앞에 標石으로 治墓를 했다.

***箕山의 여덟가지 景致를 읊은 詩 이다.

1. 天摩白雪 천마산의 설경이 아름답고
2. 佛岩曉種 불암의 새벽 종소리
3. 南角明月 남각에 비친 희영청 밝은 달아
4. 穎水漁火 영수에서 비치는 어부의 화도불
5. 杏亭樵笛 행정골짜기에서 부는 나무꾼들의 피리소리
6. 藍田盤松 남전리의 천년 노송이
7. 銅峴妙霞 구리재에 흐르는 안개속에
8. 氷玉淸風 빙옥정에 전하는 청절이 향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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