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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치즈체험하우스
제주치즈체험하우스의 표제를 정하는 데 유독 긴 고민을 했다. 취재 당일 많은 것을 보았고 맛보았으며, 그 맛 또한 썩 훌륭했다. 그런데 어째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가 생각해보니 부부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마 카메라에 담아갈 건 많이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의 마음은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것이라’ 여리고도 앙칼진 바람이 옷깃을 스미어 파던 어느 겨울날. 그 집엘 찾아갔다. 입구의 숲길이 깊은 정서를 자아낸다. 숲길의 옆으론 작지만 방금까지 사람이 손길이 닿았음을 알 수 있는 잘 정돈된 목장이 있다. 때마침 젖소를 돌볼 셈으로 나오신 주인 부부와 첫인사를 나누었고, 이내 그네들의 집으로 초대되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낯선 기분을 잠재운다. 사방으로 시원스레 난 창으론 햇빛이 부서지듯 앞다투어 들어오고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사이
낭만의 나라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은 흔히 식사의 끝에 치즈와 와인을 곁들여 먹는 것을 즐긴다 한다. 치즈와 와인. 둘이 함께하면 모두가 행복한 순간을 만들 수 있었다. ‘치즈는 음식 중의 최고이며, 와인은 음료 중의 최고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저마다의 짠맛과 단맛의 조화가 오묘하다. 둘 다 발효를 거쳐 만들어진 음식인지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풍미가 짙어지는 건 꼭 사람을 닮았다. 그 땅의 재료와 공기 그리고 바람에 따라 맛을 달리하는 와인과 치즈. 같은 지역에서 난 와인엔 같은 지역에서 난 치즈가 유독 잘 어울리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물론 제주라 해서 예외는 없다.
문래와 샛별 그리고 오름
참 듣기에 예쁜 단어다. 문래와 샛별 그리고 오름이. 이 예쁜 단어를 이름 삼은 행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주인 부부가 키우는 젖소들이다. 주인 부부는 조금 더 신선하고 건강한 치즈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직접 젖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부부가 문래와 샛별이 그리고 오름 이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은 보통 그 이상인 듯했다. 젖소가 어떤 환경에서 방목되느냐는 곧 치즈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지금은 겨울이라 샛별이와 오름인 지인의 목장에서 보내두었고요, 지금은 문래만 같이 지내고 있어요.” 라는 말에서 타지에 있는 딸을 걱정하는 여느 부모님의 모습이 보이는 게, 그게 어디 기분 탓이었을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의 저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치즈는 우리가 삶에서 가지고 싶어 하는 것에 비유된다. 그것은 명예가 될 수도 있고 건강이 될 수도 있다. 사랑, 자유, 돈, 자기만족, 운동.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내가 애착을 가진 대상일 뿐이다.
물론 그 대상을 소유하기 위한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살아 쟁취할 수도 있고, 언젠가는 내게 기회가 오리란 마음으로 느긋이 기다려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선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남에 비해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만 비추어진 것이 사실이라 조금은 아쉽다 생각한다. 그 누구도 이 방법은 옳고 저 방법은 그르다 으름장을 놓을 순 없는 노릇이 아닐까. 무엇이든 그 본연의 방식과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정착을 하고 상황이 예전보다 좋아진 것도 있지만 모두 자기 위치가 있는 거라 마음 먹다 보니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을 좋은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무언가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게 연륜이라면 연륜인 것 같습니다(웃음). 저희는 이렇게 불편하지만 자연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the bom volume 04 <작고도 큰 발견들> '밝고 예쁜 이야기만 하자는 게 아니에요' 중에서
글 라어진 / 사진 김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