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ee 제주, 있는여자 '박인영, 노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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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사는
재주 있는 여자들
두 분 왠지 자매 같아 보여요.
노: (웃음)저희는 17살 때부터 단짝친구 관계예요. 박인영, 노혜민이라고 합니다.
‘제주, 있는 여자’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노: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의 브랜드예요. 브랜드 아이덴티티라고 딱히 정해 놓은 게 없다 보니 어떤 식으로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네요. 저희는 ‘감성을 핸드메이드하다’라는 주제 아래 자연적 소재들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데 집중해요.
박: 사실 둘이 취향이 무척 달라서 옷 입는 스타일부터 해서 겹치는 게 거의 없거든요. 보통 친한 친구일수록 스타일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던데 오히려 저희는 확연히 달라요. 그래서 더 단짝친구로 쭉 지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자 보는 눈도 달라서 질투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요(웃음). 근데 유일하게 식물, 꽃 그러니깐 자연을 좋아하는 건 같았어요. 우리가 똑같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보자 해서 시작된 게 제주, 있는 여자예요.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노: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둘이서 자주 오름에 올랐어요. 그러다 보니 그곳에 자생하는 여러 식물을 접하게 되었고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 같아요.
박: 그러면 안 되지만 어떤 날은 예쁜 꽃을 봐두었다가 새벽에 서리해 온 적도 있었어요(웃음). 그렇지만 이내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당시 유행하던 드라이플라워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근데 드라이플라워 같은 경우는 꽃은 어느 정도 보존이 가능한데, 잎은 드라이하는 순간 색이 변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보완점을 찾다가 시작한 게 바로 압화예요.
아무래도 처음 해보시는 일인지라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아요.
노: 그럴 수밖에 없었죠. 저희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상태에서 시작한 일이 아닌지라 공부할 시간도 필요했고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동안 버린 꽃과 잎도 꽤 돼요.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픈(웃음).
압화 작업은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죠?
박: 압화 작업을 하는 데는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했어요. 보통 일주일에서 길게는 보름까지도 걸렸어요. 잎 같은 경우에는 변색을 막기 위해 중간중간 틈틈이 약품 처리도 해야 하고, 계속 지켜보며 체크를 해줘야 하거든요. 아기 돌보는 거랑 비슷한 것 같네요(웃음).
식물은 주로 어디서 가져오시나요?
노: 대형 꽃시장인 양재시장에서 공급받기도 하고요. 그런데 웬만하면 제주에서 나는 식물들을 사용하려고 해요. 일반 도시 꽃집에서 구하기 힘든 꽃들이 제주도엔 있어요. 고사리처럼 저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식물들은 직접 텃밭에서 키우고 있고요.
이렇게 하다 보면 식물 박사가 될 것 같아요.
박: (웃음)하다 보니깐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부분이 있긴 해요. 자연스럽게 이름을 기억하게 되고 꽃받침은 어떻게 생겼는지, 꽃잎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다분하죠.
액자가 투명해요.
노: 프레임 같은 경우는 덴마크의 한 작가의 작품을 보고서 영감을 얻었어요. 투명하다 보니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배경색이 계속 바뀌죠. 그래도 역시 가장 예쁜 건 맑은 날 하늘에 비춰볼 때가 가장 예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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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본심
사실 압화라고 하면 ‘섭리를 거스르는 일은 아닐까’하는 고찰이 늘 뒤따르잖아요.
박: 그런 고민은 항상 갖고 있어요. 압화란 게 어떻게 보면 참 이기적인 거예요.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사람의 욕심이죠.
하지만 언젠가 책에서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어요. 사실 꽃은 자기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에게 꺾이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노: 공감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래도 미안한 일인가 싶으면서도 얘네도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고요. 사람이나 식물이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은 똑같을 것 같거든요.
박: 어떤 사람들은 본인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누드 사진을 촬영한다고들 하잖아요. 꽃도 아무도 모르게 피었다가 지는 것보단 가장 예쁜 그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최근 벨롱장에도 나가셨더라고요.
노: 사실 저희 손을 떠나 다른 주인들을 찾아가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되었어요. 얼마 전 벨롱장에서 제주, 있는 여자의 타이틀을 걸고 저희 작품을 처음 선보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예쁘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박: 재밌었던 게, 압화가 다소 생소한 젊은 친구들은 신선하다며 좋아하고, 반대로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학교 다닐 때 많이 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보게 되니 참 좋네요.”하시며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오히려 저희에게 작업 팁을 주시기도 하시고요. 이렇게 직접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앞으로 제주, 있는 여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박: 글쎄요. 사실 저희는 크게 나아가고 싶진 않아요. 이 정도에서 만족해요. 애초에 취미생활에서 시작된 것이니 계속 취미로 남았으면 좋겠어요(웃음).
노: 브랜드를 운영하며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단짝 친구인 저희 둘이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 해요.
the bom volume 06 <새로운 쓰임에 관하여> '꽃과 잎을 눌러 말리는 일' 중에서
글 라어진 / 사진 김보경